[SF 명작 리뷰] 비주얼과 상상력의 극치, 영화 제5원소(1997)가 남긴 위대한 유산

안녕하세요! 오늘은 SF 영화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그리고 개봉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아티스트와 영화 팬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독보적인 작품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1997년 개봉한 뤽 베송 감독의 SF 대작, <제5원소 (The Fifth Element)>입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프랑스 영화 자본이 대거 투입된 할리우드 스타일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주목받았습니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디스토피아적이고 어두운 미래관에서 벗어나, 뤽 베송 감독 특유의 유럽 감성이 녹아든 화려한 색채와 파격적인 상상력으로 가득 찬 23세기를 선보였죠. 지금 다시 보아도 세련된 미장센과 시대를 앞서간 패션, 그리고 뇌리에 박히는 명장면들이 가득한 이 영화의 매력을 줄거리부터 출연진, 그리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관전 포인트까지 아주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 23세기 뉴욕에서 펼쳐지는 인류 구원의 여정: 방대한 세계관과 줄거리

<제5원소>의 서막은 1914년 이집트의 한 고대 신전에서 시작됩니다. 인류의 운명을 쥐고 있는 외계 종족 ‘몬도샤와’인들은 지구에 거대한 악이 찾아올 것을 예견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네 개의 원소(물, 불, 바람, 흙)를 상징하는 돌과,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해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제5원소’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신전에서 수거해 갑니다. 그들은 300년 후, 인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우주로 떠납니다.

시간은 흘러 2263년, 미래의 지구. 과학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빌딩 숲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지만, 지구는 우주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암흑의 존재인 ‘절대 악(The Great Evil)’의 위협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 절대 악은 그 어떤 핵무기나 물리적인 공격을 가해도 흡수하여 스스로를 더 거대하게 키울 뿐인, 말 그대로 재앙 그 자체였습니다. 지구 연방 대통령과 군 수뇌부는 혼란에 빠지고, 이때 몬도샤와 종족과의 비밀 서약을 대대로 이어온 고대 종교의 사제 ‘코넬리우스’ 신부가 나타나 이 재앙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과거에 가져간 네 개의 원소와 제5원소를 결합하는 것뿐임을 알립니다.

지구로 향하던 몬도샤와족의 우주선은 인류를 파멸시키려는 사악한 무기상 ‘장 바티스트 조르그’와 그가 고용한 우주 용병 ‘맹갈로어’족의 기습을 받아 추락하고 마는데, 격추된 잔해 속에서 발견된 것은 오직 세포 하나가 살아남은 정체불명의 금속 손 하나뿐이었습니다. 지구의 과학자들은 이 남은 세포를 바탕으로 최고 수준의 DNA 복제 기술을 사용해 생명체를 완벽하게 재창조해 냅니다. 그렇게 부활한 존재는 놀랍게도 오렌지색 머리를 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전사, 바로 인류를 구원할 ‘제5원소’인 ‘릴로’였습니다.

연구소를 탈출해 거대한 미래 도시 뉴욕의 빌딩 아래로 몸을 던진 릴로는 우연히 전직 특수부대 출신의 까칠한 택시 운전사 ‘코벤 다라스’의 택시 지붕 위로 떨어지게 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릴로를 보고 당황하던 코벤은 그녀의 순수함과 묘한 매력, 그리고 경찰의 추격을 피하려는 다급함을 보고 그녀를 도와주기로 결심합니다. 코벤은 릴로를 코넬리우스 신부에게 데려다주고, 그곳에서 릴로가 바로 지구를 구할 핵심 열쇠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편, 사라진 네 개의 원소 돌맹이들은 우주 최고의 디바인 ‘플라바라구나’가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으며, 그녀가 휴양 행성인 플로스턴 파라다이스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라는 첩보가 입수됩니다. 지구 정부는 전직 최고 요원이었던 코벤 다라스에게 은밀히 이 돌들을 회수하라는 비밀 임무를 부여하고, 코벤은 릴로와 함께 부부로 위장하여 우주선에 탑승합니다. 이 여정에는 화려하고 시끄러운 우주 최고의 라디오 DJ ‘루비 로드’가 동행하게 되면서 조용히 진행되어야 할 임무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소동으로 번지게 됩니다.

플로스턴 파라다이스에 도착한 그들 앞에, 돌을 가로채려는 악당 조르그와 맹갈로어 용병들이 들이닥치며 호화 여객선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디바 플라바라구나는 총격전 끝에 치명상을 입게 되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 코벤에게 자신의 몸속에 숨겨두었던 네 개의 원소 돌을 건넵니다. 코벤은 밀려드는 적들을 특수부대원 특유의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소탕하고, 릴로와 루비 로드, 코넬리우스 신부와 함께 극적으로 탈출하여 다시 지구의 이집트 신전으로 향합니다.

최종 목적지인 신전에 도착한 일행은 각 원소의 돌을 올바른 위치에 배치하고 작동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바람의 돌에는 숨을 불어넣고, 불의 돌에는 불을 붙이며, 흙의 돌에는 흙을 뿌리고, 물의 돌에는 눈물을 흘려 정해진 원소를 일깨우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중앙의 ‘제5원소’인 릴로는 지구에 오는 동안 인류가 저지른 수많은 전쟁과 학살, 파괴의 역사를 공부하며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류는 파괴만을 일삼는데, 내가 왜 인류를 구해야 하느냐”며 눈물 흘리는 릴로에게 코벤은 진심 어린 사랑을 고백하고 입을 맞춥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가치인 ‘사랑’이 채워지는 순간, 마침내 제5원소로서 완벽하게 각성한 릴로는 온몸으로 눈부신 신성한 빛을 뿜어내며 지구를 향해 돌진하던 절대 악을 돌로 만들어 소멸시키고, 인류를 극적으로 구원해 냅니다.

제5원소에 등장하는 23세기 미래 뉴욕의 거대하고 입체적인 빌딩 숲과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

2.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명품 배우들과 파격적 변신

영화 <제5원소>가 개봉 후 30년이 가까워지는 세월 동안 세련된 명작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주역 배우들의 명연기 덕분입니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누구 하나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의 앙상블은 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했습니다.

코벤 다라스 역 – 브루스 윌리스 (Bruce Willis)

<다이하드> 시리즈로 당대 최고의 액션 스타 반열에 올랐던 브루스 윌리스는 이 영화에서 전직 연방 특수부대 소령 출신의 택시 운전사 코벤 다라스를 연기했습니다. 그는 늘 찌들어 있고 아침마다 잔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소시민적인 모습과, 위기의 순간에는 눈빛이 돌변하며 적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베테랑 전사의 모습을 능청스럽게 오갑니다. 뤽 베송 감독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웅의 모습에 피로감을 느끼던 관객들에게, 시니컬하면서도 인간미 넘치고 한 여자에게 목숨을 거는 로맨티시스트의 면모를 가진 코벤 다라스라는 독창적인 영웅상을 브루스 윌리스를 통해 멋지게 구현해 냈습니다. 오렌지색 고무 셔츠를 입고 펼치는 그의 시원시원한 액션은 영화의 확실한 오락성을 보장합니다.

릴로 역 – 밀라 요보비치 (Milla Jovovich)

당시 신인이었던 밀라 요보비치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며 단숨에 글로벌 스타이자 전설적인 SF 액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녀가 연기한 ‘릴로(Leeloo)’는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존재이자 지구를 구할 절대 무기입니다. 밀라 요보비치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세상 모든 것이 낯설고 순수한 아이 같은 모습부터, 엄청난 괴력과 무술 실력으로 군인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강력한 여전사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특히 뤽 베송 감독과 함께 영화를 위해 직접 창제했다는 가상의 외계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보여준 신비로운 아우라는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오렌지색 단발머리와 흰색 붕대 붕대 스타일의 의상은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비주얼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장 바티스트 조르그 역 – 게리 올드만 (Gary Oldman)

레옹의 악질 형사 스탠스 필드 역으로 이미 악역의 마스터피스를 보여주었던 게리 올드만은 이 작품에서 비대칭 단발머리에 금속판을 머리에 붙인 기괴하고 세련된 비주얼의 무기상 ‘조르그’로 등장하여 다시 한번 역대급 빌런 연기를 선사합니다. 조르그는 절대 악과 교신하며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잔혹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부하들의 무능함에 뒷목을 잡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등 블랙 코미디적인 면모를 함께 가진 입체적인 악당입니다. 게리 올드만 특유의 광기 어린 연기력과 독특한 걸음걸이, 조소 섞인 말투는 자칫 평범해질 수 있었던 SF 영화의 대립 구도에 엄청난 긴장감과 독특한 리듬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 코벤 다라스와 메인 빌런인 조르그가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사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존재감만으로 스크린이 가득 찹니다.

루비 로드 역 – 크리스 터커 (Chris Tucker)

영화의 후반부를 책임지며 하드캐리하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단연 크리스 터커가 연기한 라디오 DJ ‘루비 로드’일 것입니다. 레오파드 패턴의 파격적인 전신 슈트와 하이힐, 마이크를 형상화한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등장하는 그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모든 순간 관객들의 시선을 강탈합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초고속 하이톤의 수다와 과장된 몸짓, 겁은 엄청나게 많으면서도 카메라만 켜지면 프로페셔널하게 변하는 그의 코믹 연기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세계 멸망의 위기 상황 속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최고의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이후 <러시아워> 시리즈로 이어지는 크리스 터커 표 코믹 액션의 정점을 이 작품에서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3. 세월을 뛰어넘는 위대함: <제5원소>의 3대 관전 포인트

이 영화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화를 감상할 때 반드시 집중해서 봐야 할 세 가지 핵심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 드립니다.

① 장 폴 고티에가 완성한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미래 패션

<제5원소>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영화 전체의 의상을 담당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Paul Gaultier)’의 참여입니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무려 900여 벌이 넘는 의상을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 릴로의 상징적인 화이트 붕대 수트(스트랩 수트)는 미니멀리즘과 전위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며 캐릭터의 신비로움을 더했습니다.
  • 조연과 단역, 심지어 스쳐 지나가는 미래의 맥도날드 점원과 공항 승무원, 경찰들의 제복까지 장 폴 고티에의 위트 있고 감각적인 터치가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미래 세계의 의상을 단순히 기능적인 옷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예술적 패션쇼’로 승화시킨 그의 비주얼 디렉팅은 영화의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일등 공신입니다.

② 영화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디바 플라바라구나’의 오페라 공연

영화의 중반부, 휴양 행성 플로스턴 파라다이스의 극장에서 펼쳐지는 파란 피부의 외계인 오페라 가수 ‘디바 플라바라구나’의 공연 시퀀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소름 돋는 명장면으로 손꼽힙니다.

  •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광란의 아리아’로 시작되는 이 공연은, 후반부에 이르러 인간의 성대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기계적이고 빠른 템포의 일렉트로닉 비트와 결합한 ‘디바 댄스(The Diva Dance)’로 이어집니다.
  • 이 천상에서 온 듯한 기묘하고 아름다운 노래에 맞춰, 주인공 릴로가 격투를 벌이며 적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는 액션 장면이 교차 편집(Cross-cutting)되는데, 음악의 리듬과 릴로의 타격 타이밍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며 관객에게 짜릿한 시각적, 청각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실제 소프라노 인바 물라의 목숨을 건 가창과 컴퓨터 합성 기술이 결합하여 탄생한 이 곡은 지금도 수많은 음악가들이 커버하는 전설적인 트랙입니다.

③ 유럽 감성으로 재해석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비주얼 믹스

뤽 베송 감독은 이 작품을 구상할 때 프랑스의 유명 만화가 장 지로(뫼비우스)와 장 클로드 메지에르의 그래픽 노블 작품들에서 거대한 시각적 영감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CG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정교하게 제작된 대규모 미니어처 세트와 아날로그적 특수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 겹겹이 쌓인 하늘을 나는 노란색 택시들이 가득한 뉴욕 거리는 미니어처 기법을 통해 밀도 있고 사실감 넘치게 표현되었으며, 외계 종족인 맹갈로어인들의 특수 분장 역시 디지털 컴퓨터 그래픽이 주지 못하는 묵직한 물리적 존재감을 전달합니다.
  • 여기에 세련되고 팝한 원색 중심의 컬러 매칭이 더해져, <제5원소>만의 독창적이고 유일무이한 미래 세계의 텍스처를 완성해 냈습니다.

마치며: 인류를 구원하는 궁극의 원소는 무엇인가

<제5원소>는 겉으로는 화려한 볼거리와 유쾌한 액션으로 무장한 오락 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인류에 대한 깊은 성찰과 묵직한 휴머니즘 메시지가 깔려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순식간에 습득한 제5원소 릴로가 인류의 ‘전쟁(War)’이란 단어를 마주하고 절망하는 장면은 인류가 스스로를 파괴해 온 역사에 대한 아픈 지적입니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제5원소’, 즉 세상을 구원할 최종 무기는 대단한 과학 기술이나 거대한 파괴력을 가진 무기가 아닌, 타인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Love)’이었습니다.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고전적인 진리를 가장 세련되고 파격적인 비주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기에, 이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나는 명작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주말, 눈과 귀가 모두 즐거워지는 90년대 최고의 SF 마스터피스 <제5원소>를 다시 한번 정주행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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